
곰팡이는 경계를 오가며 표면을 따라 번지고,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다른 상태로 이행한다. 이는 분리된 것들 사이를 넘나들며 틈을 통과하고, 서로 다른 층위들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전시에 등장하는 ‘곰팡이’는 이러한 물질 위에 덧씌워진 은유라기보다, 이미 오염되고 열려있는 상태가 스스로 확장하고 번져가는 방식을 가리키는 이름
에 가깝다.《곰팡이는 천을 건너간다》는 이러한 이동과 스며듦의 감각을 따라, 물질의 표면을 넘어 시간과 흔적, 그리고 관계가 형성되는 경계의 상태를 사유한다. 여기서
‘건너감’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맞닿고 어긋나며 변형되는 과정에 가깝다. 이번 전시에는 완결된 장면으로 수렴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이어지며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서의 존재를 드러낸다.
박소진은 그동안 버려진 섬유와 봉제 공정에서 남겨진 잔여를 수집하고, 이를 다시 엮고 꿰매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섬유 폐기물은 단순히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라, 이미 사용과 마모, 이동의 시간을 통과하며 타자와 접촉한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로서 시간과 접촉의 흔적이 축적된 상태로 남겨진다. 작가는 바느질과 덧댐,
염색과 반복의 과정을 통해 폐기된 섬유를 복원하는 대신, 그 불완전한 상태를 더욱 확장시키며 서로 다른 조각들 사이에 느슨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업은 파편과
잔여, 그리고 서로 맞닿지 않는 틈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를 드러내며, 회화와 텍스타일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실험으로 확장된다.
전시는 태피스트리, 회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섬유의 물성과 시간의 흔적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형성되는 틈과 경계에 주목하며, 파편과 부산물처럼 남겨진 요소들을 즉흥적인 방식으로 엮어낸다. <몸속의 굴>은 봉합과 해파열의 흔적이 중첩된 내부의 통로를 드
러내며, 기억과 감정이 축적되고 다시 흘러나오는 신체적 공간을 형성한다. 구멍을 응시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내부로 파고드는 과정으로 이어지고, 표면의 구멍이 깊어질
때 그것은 하나의 ‘굴’이 된다. 이 작업에서 굴은 자신을 유폐시키는 은신처인 동시에, 기억과 감정이 축적되고 다시 흘러나오는 신체적 공간으로작동한다. 그 내부에서 드러나는
것은 매끄럽게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찢기고 다시 꿰매어진 불완전한 풍경이다. 이러한 내부성은 물질의 표면 위에서 다시 구체화된다. 커피로 염색한 리넨 위에 반복된 손바느
질로 완성한 <곰팡이는 천을 건너간다>는 번지고 스며드는 시간의 상태를 물질의 표면으로 전이시키며, 인체를 연상시키는 형상이 파편처럼 생성되었다가해체되는 상태를 드러
낸다. 천의 조직 사이를 파고드는 바늘땀은 벌어진 구멍을 메우려는 시도인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구멍들의 기록으로 남는다. 특히 <무의 바다>는
폐이불 위에 2 년에 걸쳐 반복된 손바느질 작업으로, 바늘이 천을 파고드는 느린 행위의 축적을 통해 시간의 밀도를 드러낸다. 반복은 점차 감각을 무디게 만들며, 검은 실이 남긴
흔적은 파도처럼 겹치며 소리 없는 물결을 형성한다. 수평으로 이어지는 바느질의 흐름은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내며, 지속되고 침잠하는 감각으로서의 시간
을 환기 한다. 또한 <수평 인간>과 <스며든 흔적> 연작은 반복되는 선과 섬유의 축적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압축하며, 신체가 감각하는 시간, 늘어지거나 응축되는 경험의 밀도를
시각화한다. 이때 바느질은 사라졌다고 여겨진 것들을 다시 호출하고 서로를 간신히 잇는 행위로 작동한다. 이렇게 작업은 서로 스며들면서도 완전히 합쳐지지 않는 상태인 틈과
경계 위에 머무르게 된다.
《곰팡이는 천을 건너간다》는 섞임과 오염을 관계가 시작되는 자리로 바라본다. 전시는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완결이 아닌 지속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스치고 스며들며
형태를 바꾸는 존재의 방식을 따라간다. 실을 꿰고 엮는 반복적인 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의 리듬을 만들어내며, 이는 전시 중 선보이는 퍼포먼스에서 발생하는
긁힘과 떨림, 타격과 울림의 소리와 겹친다. 바늘이 천을 통과하는 미세한 긴장과 공기의 진동이 공간 안에서 공명하며, 닿았다가 어긋나고, 이어졌다가 다시 풀리는 흐름을 만든다.
끝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상태, 그러나 계속해서 번져가는 관계들. 작가는 그 느린 수행과 진동의 시간 속에 머물며,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능성들을 조용히 열어두고 있다.
전시 《곰팡이는 천을 건너간다 》서문 ( 글 이주연 큐레이터 )


















